D.I.Y Labels In Seoul

유튜브 시대의 음악 만들기는 더 이상 전문적이고 비밀스러운 일만은 아닐 것이다. 어렵기만 했던 작곡이나 악기 연주도 유튜브의 도움으로 누구나 따라 할 수 있고, 참고할 만한 전문가의 취향이나 방식을 엿보기도 쉽다. 물론 진입장벽이 낮아진 만큼, 차이는 오히려 선명한 듯하다. 방식은 비슷할 수 있으나 음악을 대하는 태도와 경험에 따라 그 결과물의 함량이 다를 수밖에 없으니까. 흔들림 없이 묵묵히 마스터피스를 향해 정진하는 장인처럼, 화려하진 않지만 조용하고 굳건히 자신만의 음악을 만들어나가는 한국의 언더그라운드 아티스트들에게 그들의 음악과 직접 운영하는 레이블에 관해 물었다.        

 

Blaq Lotus Records(vansernu)

a. 자기소개를 부탁한다. 

1인 레이블 Blaq Lotus Records의 설립자이자 샘플링 아티스트, 프로듀서, DJ로 활동하고 있는 Avantgarde Vak이다. Vansernu라는 DJ명으로도 활동하고 있는데, Vansernu는 더 Hip-Hop 성향이 강한 음악을 틀 때 사용한다.

b. 어떻게 음악의 길로 들어서게 됐나?

진로를 정해야 했던 시기인 90년대 후반, 한국에서 Hip-Hop이 유행했고 나도 그 문화에 푹 빠져 랩을 하며 가사를 쓰기도 했다. 랩을 하기 위해 자연스럽게 비트를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했고, MPC 2000XL이 처음 나왔을 때, 고등학생이었던 나는 가진 돈을 다 털어 낙원상가에서 그 악기를 무작정 사 왔다. 이때부터 학업을 중단하고 비트를 만들며 작곡을 시작했고, 2002에는 당시 발매된 Leessang의 1집 <Leessang Of Honey Family>의 수록곡 ‘Wammin’ Up’ 프로듀싱으로 공식 데뷔를 하기도 했다. 차츰 랩보다 비트를 만드는 것에 더 매력을 느꼈고, Pete Rock의 <PeteStrumentals>, Madlib의 <Shades Of Blue> 앨범에 큰 영향을 받아 2005년, <Brown Boat #1>이라는 첫 Instrumental 형식의 앨범을 완성했다. 이 앨범은 다양한 Jazz 곡을 샘플링한, 한국 최초의 Instrumental 앨범이라고 할 수 있다. 이때부터 지금까지 샘플링 기반의 Instrumental 앨범과 믹스테이프를 꾸준히 내고 있고, 올해 여름에 새 앨범을 발매할 예정이다.

c. 자신이 운영하는 레이블에 대해 설명해달라. 

내 이야기가 곧 레이블의 이야기이기 때문에 개인적 내용이 들어갈 수밖에 없을 텐데, 작곡을 처음 하던 시기부터 생각해 놓은 이름인 Blaq Lotus Records를 첫 앨범 <Brown Boat #1>을 내면서부터 공식화했다. 하지만 레이블 시작과 동시에 유통사에 사기를 당해 큰 상실감과 배신감을 맛보게 되었고(<Brown Boat #1> CD는 안타깝지만 현재 내게도 남아있는 재고가 없다), 이때부터 수년간 두문불출하며 방황의 시기를 보냈다. 그즈음 <The Upaloopa Vol.1: Grittiness Spheres>라는 Funk, Soul 장르 기반의 시리즈 앨범을 CD로 발매했지만, 당시에는 음반 포맷이 CD나 Cassette에서 Mp3 파일로 넘어가는 시대였기 때문에 빛을 발하지 못했다. 무척 괴롭고 경제적으로도 어려웠으나, 레코드를 많이 모으고 드럼머신을 직접 연구 및 개조하는 등 진정한 내 음악색을 찾고자 했다. 은둔 생활을 하며 만든 트랙을 모아 <Untitle>라는 Experimental 형식의 앨범을 만드는 등 꾸준히 작업도 이어갔다. Blaq Lotus Records가 레이블의 모습을 갖춰나가기 시작한 것은 2017년, <Yamang: Essence Of Avant-Tape>를 LP와 Cassette로 발매하면서부터다. 예전부터 여러 장르를 샘플링한 트랙들을 <Avant-Tape>라는 믹스테이프 시리즈로 Bandcamp에 올리곤 했는데, 그 수록곡 중 12트랙을 엄선한 앨범이다. 물론 믹싱, 마스터링까지 혼자 작업했고, 프레싱은 캐나다와 일본에 맡겼다. 고맙게도 국내외 인디펜던트 레코드 샵에서 모두 품절되었고, 이 앨범을 통해 내 작업과 레이블 운영 방식에 자신감과 가능성을 느끼게 됐다. 오래된 샘플러, 드럼머신으로 음악을 만드는 것은 어떻게 보면 시대에 뒤처졌다 생각할 수도 있으나, 누군가는 꼭 지켜나가야만 하는 일이라 믿는다. 그리고 그런 작법이 내 음악을 제일 잘 보여줄 수 있는 방식이 아닐까?

 

d. 한국 언더그라운드 신의 소규모 또는 1인 레이블 중 하나로서자신의 레이블에서만 느낄 수 있는 특징은 무엇인가?

일단 한국에선 유일할뿐더러 해외에서도 내 방식처럼 음악을 만드는 레이블은 거의 없다고 생각한다. 이것이 Blaq Lotus Records의 가장 큰 특징 아닐까? 또한, 1인 레이블로서 뭔가 결정할 때 한없이 자유롭지만, 그 결과를 오롯이 홀로 받아들인다는 점. 레이블 운영의 모든 기준을 내가 정하고 거기에 맞춰 행동하기 때문에, 유행에 따른 음악적 변화라든가 성공에 대한 부담이 크게 없다. 이런 점들 덕분에 시간이 갈수록 내가 고집하는 방식을 좋아하고 기다려주는 사람이 늘면서, 나도 그 에너지에 힘을 얻어 레이블 운영과 음악 활동을 꾸준히 이어갈 수 있다.        

e. 레이블 발매작 중개인적으로 가장 애착이 가는 음반은 무엇인가?

앞서 말했던 <Yamang: Essence Of Avant-Tape>라는 앨범이다일단 처음으로 LP 제작하기도 했고나도 모르는 많은 분들이 내 음악만 보고 좋아해 준 음반이라 가장 의미가 있다또한 당시 스스로의 음악적 정서를 다시 담기는 힘들다고 생각할 정도로매우 뛰어난 앨범이라 자부한다(웃음).

 

f. 특별히 관심이 가는 또는 추천하고 싶은 한국의 다른 레이블이 있나? 

한국에 좋은 레이블이 너무 많지만, 그중 하나를 꼽자면, Free Jazz 장르 중심의 Mung Music이라는 레이블을 추천하고 싶다. 최근 알게 된 레이블인데, 특이하게 Cassette로만 릴리즈를 한다. 인디펜던트한 레이블의 운영방침도 마음에 든다. 특히 소속 아티스트 중 Daniel Ko라는 색소포니스트가 있는데, 연주가 기가 막힌다. 지인을 통해 연이 닿아, 어느 바에서 디제잉을 할 때 그가 색소폰을 가져와 즉석에서 함께 공연하기도 했다. 너무 값진 경험이었고, 조만간 작업도 같이 해보고 싶다.

g. 향후 활동 계획은?

원래 올해 일본과 러시아에 디제잉 일정이 잡혀 있었는데코로나로 취소되었다. 6월에 새 앨범이 나오고또 이전에 몇몇 아티스트에게 준 곡들이 곧 릴리즈될 예정이다그리고 예전부터 해오던 믹스테이프 작업은 언제나 그랬듯 꾸준히 할 생각이다내게 믹스테이프 녹음은 매우 의미 있는 일이다사람들에게 음악을 알리는 통로인 동시에알게 모르게 거기서 영향을 받는 젊은 친구들이 있다는 걸 느꼈기에 게을리할 수 없다그리고 Blaq Lotus 발매작들을 Discogs에 업데이트하고 판매도 시작해야지.    

No Slack Records(NoSlackRecords)

a. 일렉트로닉 뮤직 레이블 No Slack Records의 수장인 프로듀서 Livigesh라고 한다. 예전엔 디제잉도 했지만, 라이브로 직접 악기를 연주하는 게 더 재미있어서 현재는 라이브 퍼포머로만 활동 중이다.

b. 어렸을 때부터 피아노, 바이올린, 기타 등 클래식한 악기를 접하고 연주했다. 아버지의 직업 덕분에 초등학교 때 에티오피아에 살며 국제학교를 다녔는데, 여러 외국 친구들의 영향으로 전자기타를 배우기도 했다. 이후 시카고에서 친구들과 Post Rock 밴드를 결성해 활동하다가, 우연히 Aphex Twin의 음악을 접하고 큰 충격을 받았다. TechnoDrum N Bass 같은 전자음악에 눈을 뜨게 되었고, 이런 장르의 음악을 들으며 바이닐도 조금씩 모으기 시작했다. 음악적 취향이 상당히 넓어진 시기라 말할 수 있다. 프로듀싱도 이즈음 처음 시작했는데, 그때는 에이블톤을 Rock 공연에서 비트를 입히는 정도의 도구로 사용했다. 그러다 미국 콜로라도 쪽 대학에서 음악 전공 당시 만난 절친과 프로듀싱 듀오를 결성하며 전자음악에 더 심취하게 됐다. 한국엔 2014년에 들어왔고, Livigesh라는 이름으로 현재까지 꾸준히 활동하고 있다. Livigesh는 좋아하는 로마 역사학자의 이름에서 딴 ‘Livi’와, 내가 만든 단어인 ‘gesh’의 합성어다.

c. ‘No Slack’은 ‘처지지 말자’ 혹은 ‘열심히 하자’라는 뜻인데, 학창 시절 친구들과 음악을 배우며 놀 때 늘 입버릇처럼 던지던 추임새 같은 문장이다. 예전부터 이 문장을 꼭 레이블 이름으로 써야겠다고 생각했고, 한국에 귀국해 2년간 준비한 첫 앨범인 <Disco Island>와 후속작 <At Ease>를 No Slack Records의 이름으로 발매했다. 자연스럽게 라이브 퍼포먼스, 릴리즈 파티, 영화 OST 참여 등 여러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소속 아티스트들을 만나며 지금 같은 레이블의 모습을 갖춰나가게 됐다. No Slack Records는 ‘Timeless 전자음악’을 목표로 현재도 계속 진화 중이다.

d. 다 그런 건 아니지만, 보통 한 레이블에서 추구하는 음악은 특정 장르를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House 레이블이면 대부분 House 음악을 발매한다거나. No Slack Records는 전자음악이라는 큰 틀이 있을 뿐 Techno, Ambient, Industrial, Drum n Bass, Downtempo 등 다양한 스타일을 지향한다. 그러면서 이런 음악을 만드는 소속 아티스트 개개인의 개성을 살리려 항상 노력한다.

e. Kisewa의 <Bullet Ballet>과 내가 작년에 낸 <Wolf Pack>을 꼽고 싶다. 먼저 <Bullet Ballet>는 드럼머신이 아닌 실제 드럼으로 강한 리듬을 만들고, 노이즈를 더해 그 조합을 Industrial하게 풀어낸 실험적 앨범이라는 점에서 애착이 간다. Kisewa는 직접 믹싱과 마스터링을 다 마치고 앨범 커버까지 준비해 내게 찾아왔는데, 그 정성에 무척 감동했다. <Wolf Pack>의 경우 제작까지 2년 정도가 걸렸는데, 당시 나는 SquarepusherCeephax Acid Crew 형제의 Drum n Bass에 큰 영향을 받아 리듬이 돋보이는 음악을 만들고 싶었다. 드럼머신으로 ‘신들린’ 드럼 사운드를 구현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고, 그런 부분이 잘 표현된 앨범인 것 같아 맘에 든다.

f. 추천이라기보다 흥미가 가는 레이블은 Magic Strawberry Sound라는 인디 레이블이다. 소속 아티스트 Rainbow99와 친분이 있는데, 그는 긴 시간 동안 전국의 도시를 돌며 영감을 받아 만든 곡들로 앨범을 내고, 그 과정을 영상으로 기록해 뮤직비디오나 다큐멘터리도 함께 제작하는 식의 작업을 한다. 그런 일련의 과정을 보며 Magic Strawberry Sound 아티스트들은 좋은 아이디어만 있으면 저렇게 재미있고 자유롭게 창작 활동을 할 수 있겠구나, 생각한 적이 있다.

g. 올해 2월 소속 아티스트 Seiryun의 <Too Chill>이라는 싱글이 막 발매됐다. Livigesh가 아닌 내 본명 Junmin Cho로도 곧 앨범이 나온다. 10대부터 20대 초반까지 만든 Folk, Alternative Rock 등의 곡들로 채운 회고록 같은 음반이다. 하지만 무엇보다 코로나 끝나고 레이블 파티를 하고 싶은 마음이 제일 크다(웃음).

Eastern Standard Sounds(ESS.KOREA)

a. Eastern Standard Sounds의 설립자이자 General Director, 음반 제작자인 오정석(청달)이다. 트럼펫 연주자이기도 하고 Reggae, Funk, Jazz 등 여러 장르의 레코드를 모으며 DJ로도 활동하고 있다

b.한창 음악적 취향을 찾아가던 시기, Jazz의 편안함과 즐거움이 좋아 즐겨 듣다가 서서히 Jazz 영향을 받은 자메이카 음악 스타일인 Ska에 푹 빠지게 됐다. 자연스레 자메이카의 대표 장르 Reggae에도 관심을 갖게 됐고, 이런 장르의 음악을 구성하는 악기들, 특히 트럼펫에 큰 매력을 느꼈다. 이후 밴드 킹스턴 루디스카에서 연주자로 활동하는 동시에 Reggae, Ska, Dub 등의 레코드를 판매하는 온/오프라인 매장을 운영했는데, 이때 ‘동양표준 음향사(이하 동표사)’라는 이름을 처음 썼다. 돌이켜보면 그 시점이 음반 제작자라는 길의 시작이자 레이블의 첫걸음이었던 것 같다.

c. 근 20년간 Reggae 음악과 음반을 접하면서, 이 장르의 매력이 한국 시장에서도 통할 것이라 생각했다. 예전부터 연주자로 참여해온 NST & The Soul Sauce의 2016년 발매작 <Heaven is Here>가 동표사의 첫 음반이었다. 당시 동양의 무명 밴드였던 NST & The Soul Sauce가 전설적 Reggae 뮤지션 Rico Rodriguez를 트리뷰트한 이 앨범을 발매하자, 신기하게 해외에서 먼저 긍정적 반응이 왔다. 그렇게 ‘한국형 자메이카 음악’의 가능성을 보게 되었고, 거기에 힘입어 Reggae와 한국 고유의 판소리를 결합한 새로운 형태의 음악을 선보일 수 있었다. NST & The Soul Sauce meets Kim YulHee의 <Version>은 판소리의 다섯 마당 중 ‘심청가’와 ‘흥보가‘를 모티브로 만들었는데, 일본 Fuji Rock Festival을 비롯, WOMEX, Trans Musicales, Kennedy Center Honors 등 각국을 대표하는 음악 축제에서 찬사에 가까운 평가를 이끌어냈다. 2019 한국대중음악상 최우수 Jazz-Crossover 부문 후보에 오르기도 했고. 아쉽게도 지금은 코로나로 인해 투어를 진행할 수 없는 상황이지만, 지난해 <The Swallow Knows> 7인치에 이어, 새 싱글인동해바다 (East Sea)’가 발매되었다. 이밖에도 추다혜 차지스(CHUDAHYE CHAGIS), 오마르와 동방전력(Omar & The Eastern Power) 등 독창적 시도를 거듭하고 있는 팀들의 국내외 유통 및 홍보 등 에이전시 역할을 하고 있으며, 신한태와 레게소울(Shinhantae and Reggae Soul)과 같은 Reggae/Dub 신예 아티스트의 음반 제작에도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d. 동표사의 캐치프레이즈는 ‘Roots & Culture’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음악은 단지 장르의 개념으로만 이해할 것이 아니라, 하나의 문화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믿는다. 레이블을 운영하며 전 세계 음악은 모두 그 뿌리에서 하나로 연결된다는 것을 느꼈다. 그러니 세계와 소통하기 위해서는 한국 고유의 문화를 바탕으로 한 음악을 발굴하고, 동시에 그것을 재밌고 새롭게 풀어내야 한다. 동표사는 동양의, 그중에서도 한국의 아주 작은 레이블에 불과하지만, 이런 신념으로 만든 동표사의 음악은 확실히 타 레이블과 다르다고 생각한다.

e. 아무래도 앞서 언급한 NST & The Soul Sauce meets Kim Yulhee의 <Version>이 아닐까 싶다우리가 추구하는 한국형 Reggae’를 세계에 알린 기념비적 앨범이라는 점에서 애착이 크다덕분에 동표사의 음악이 국내 대중에게도 많이 알려졌고아직 동표사의 음악 스타일이 생소하다면꼭 들어보길 권한다.

f. 사실 다른 레이블에 대해 잘 모르지만, Kim Oki와 그가 진행하는 프로젝트들이라 말하고 싶다. 김오키는 NST & The Soul Sauce에서 같이 연주하던 동료였는데, 워낙 자신만의 음악 세계를 그리는 창작 욕구가 강한 친구다. 결국 스스로의 길을 개척해 한국 Jazz의 독보적 존재로 자리매김했다.

g. 소속 아티스트들의 새 앨범 및 싱글이 곧 발매되는데특히 7인치 바이닐에 주력할 예정이다코로나가 잠잠해지면 잠정 중단 중인 여러 국내외 오프라인 활동도 계획 중이다좀 더 거시적으로는아직 Reggae의 불모지인 한국 시장에서 실력 있는 아티스트들이 걱정 없이 활동하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다그런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우리는 우리 음악의 근본을 더욱 존중하고 기록해나갈 것이다단 한 장의 앨범을 만들더라도 그것이 마스터피스가 될 수 있도록너무 비장했나(웃음)?


Keep Digging

Want to join the Discogs Community of music lovers?
Sign up for an account, subscribe to Discogs newsletters, and discover music articles, exclusive news, limited-edition offers, and more.
––––
Return to Discogs Blog
×